2026년 전 세계 극장가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는 예상을 깬 대형 SF 장르의 흥행으로 활기를 되찾은 반면, 한국 영화계는 극심한 작품 기근에 시달리며 마른 논바닥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와 기회의 교차점 속에서 한미 양국의 극장가를 굳건히 견인하는 확실한 흥행 카드들은 존재한다.
할리우드의 지각변동과 아마존 MGM의 화려한 비상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말 그대로 박스오피스를 휩쓸며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탄생을 알렸다. 대중에게 어필하기 가장 어려운 장르로 꼽히는 SF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단위 관객을 포함한 전 세대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점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개봉 주말이었던 지난 3월 20일부터 22일 사이 북미에서만 8,050만 달러를 거둬들였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이후 지난 10년간 속편이나 기존 프랜차이즈가 아닌 오리지널 영화 중 두 번째로 높은 오프닝 성적이다. 여세를 몰아 개봉 6일 차인 어제 25일에는 북미 수익 1억 달러를 가볍게 돌파하며 전 세계적으로 1억 5,000만 달러를 쓸어 담았다.
이는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봄, 라이언 고슬링이 ‘마션’의 원작자 앤디 위어의 미출간 원고를 출간 1년 전에 미리 받아보고 제작과 주연을 자처한 지 6년 만에 거둔 쾌거다. 멸망해가는 별들을 구하기 위해 외계인 ‘로키’와 협력하는 과학자의 우주적 사투가 전 세계적인 시대적 위기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에이미 파스칼이 제작에 참여하고 필 로드와 크리스 밀러 감독, 각본가 드류 고다드가 합류하며 초호화 진용이 꾸려졌다. 당초 MGM이 300만 달러에 판권을 확보했으나, 이후 아마존이 스튜디오를 인수하면서 1억 9,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투입해 거대한 스케일의 영상화가 가능했다.
이번 흥행은 아마존 MGM이 수십 년 만에 새로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헬렌 모스 국제 배급 부문 사장이 글로벌 배급망 구축을 완료함에 따라, 과거 북미 시장에만 머물렀던 MGM은 소니나 유니버설 등에 의존하지 않고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제임스 오티즈가 연기한 외계인 ‘로키’의 엄청난 부가 수익 창출 잠재력과 더불어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원작자 앤디 위어는 현재 전혀 다른 신작 집필에 몰두하고 있지만, 속편에 대한 아이디어 구상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른 논바닥 충무로, 그 중심에 선 ‘조인성 쓰리콤보’
이처럼 할리우드가 엄청난 자본력과 우주적 스케일로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면, 전년도보다 작품 빈곤 현상이 더욱 심화된 한국 영화계는 탄탄한 팬덤과 연기력을 갖춘 톱스타의 활약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단연 배우 조인성이다. 올해 한국 영화계의 갈증을 해소할 최고 기대작 3편의 크레딧에는 모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견이 없는 올해 최고의 화제작은 오는 7월 개봉을 확정한 나홍진 감독의 SF 스릴러 ‘호프’다. 촬영은 일찌감치 2024년 상반기에 끝났지만, 거의 모든 장면에 컴퓨터 그래픽이 동원되는 탓에 1년 넘게 꼼꼼한 후반 작업을 진행 중이다. 비무장지대 인근 마을 ‘호포’에 나타난 미지의 존재와 사투를 벌이는 순경(황정민)과 사냥꾼(조인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 영화가 지금껏 시도하지 못했던 500억 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됐으며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톱배우들까지 가세해 호기심을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공개된 포스터에는 숲을 배경으로 누군가 말을 타고 달리며 장총을 든 조인성 추정 인물을 낚아채는 역동적인 모습이 담겼다. 외계 존재라는 소재에 카우보이를 연상케 하는 승마 액션이 가미된 사실만으로도 전형성을 탈피한 나홍진표 SF의 탄생을 예고한다. 투자와 배급을 맡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다가오는 5월 칸국제영화제 진출을 목표로 후반 작업의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다.
이에 앞서 류승완 감독의 첩보 액션물 ‘휴민트’는 설 연휴를 겨냥해 지난 2월 11일 개봉하며 올해 대작 러시의 포문을 열었다. 한 명의 정보원을 둘러싼 남북 간의 숨 막히는 첩보전을 다룬 이 영화는 배급사 NEW가 올해 유일하게 투자와 배급을 맡은 작품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서늘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북한 국가보위성 간부 역의 박정민과 국정원 과장 역의 조인성이 팽팽한 대결 구도를 펼친다. 류 감독 특유의 묵직한 긴장감에 조인성이 전작 ‘무빙’에서 선보였던 날렵한 총기 액션이 결합해 극장가에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스크린과 OTT를 아우르는 거장들의 귀환
거장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 역시 조인성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전도연, 설경구, 조여정과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은 해고 노동자 부부를 중심으로 삶의 환경과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른 두 부부가 서서히 얽히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 감독이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던 단편 ‘심장소리’의 플롯을 확장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당초 극장 개봉과 칸영화제 진출이 점쳐졌던 이 작품이 넷플릭스로 선회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OTT 작품에 비교적 개방적인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첫선을 보인 후, 영화제가 끝나는 9월이나 10월 무렵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될 전망이다.
‘빈 창고도 다시 보자’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올 만큼 극장용 텐트폴 영화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묵혀뒀던 대작들도 속속 관객을 찾는다. 연상호 감독은 200억 원 규모의 쇼박스 투자 배급작 ‘군체’를 오는 5월에 내놓는다. 전지현의 오랜만의 극장 복귀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감염으로 인해 좀비처럼 변해버린 인류가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진화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추가했다. 구교환, 신현빈, 김신록, 고수 등이 합류해 연 감독 특유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더욱 확장할 예정이다.
더불어 개봉 시기를 오랫동안 저울질하던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두 작품,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최민식, 박해일 주연)와 김지현 감독의 ‘정가네 목장'(류승룡, 박해준 주연)도 마침내 올해 극장 간판을 단다. 또한 지난 2월 4일에는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휴민트’와 맞붙으며 극장가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계유정난으로 유배당한 단종의 비극을 바탕으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촌장(유해진)이 어린 선왕(박지훈)을 자기 마을의 유배객으로 유치하려 고군분투한다는 참신한 스토리를 담아냈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에 장 감독과 유해진 특유의 유머를 녹여내며 사극에 현대적인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