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상하는 사과 재배지 양구의 도약과 식탁의 안전을 지킬 과학적 해법

여름이 점차 길어지고 무더워지면서 전국 과일 재배 지도가 뚜렷하게 북상하고 있다. 과거 청송이나 영주 등 경상북도 일대에서 주로 자라던 사과가 이제는 서늘한 강원도로 자리를 옮겨가는 추세다. 사과는 본래 아한대 기후에 적합한 과일로, 기온이 낮은 환경에서 품질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 마을’은 새로운 사과 명산지로 각광받고 있다. 마치 거대한 화채 그릇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이 고지대 분지 마을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전체가 거대한 사과 바구니처럼 보인다. 높은 일교차와 고랭지의 찬 기운을 듬뿍 받고 자란 양구 사과는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뛰어나다. 펀치볼 마을 농부들이 “낯설다고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한 번 먹어보라”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이유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빚어낸 펀치볼 사과

펀치볼 마을의 사과 농사 성공기 이면에는 사람 냄새나는 훈훈한 사연들이 녹아있다. 혜인농원의 안덕근(66) 농부는 가업을 물려받은 여느 귀농인들과는 출발부터 달랐다. 30여 년 전 수해 복구를 위해 우연히 양구를 찾았던 그는 지역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에 이끌려 아예 이곳에 터를 잡았다. 동네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그의 막내딸이 최근 -57kg급 태권도 국가대표로 발탁되자, 온 마을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 현수막을 내걸었을 정도다. 12년 전 사과 재배에 뛰어든 그는 현재 해발 700m에 위치한 1만 1000평(3만 6363㎡) 규모의 과수원에서 아오리와 부사 등 5000여 그루의 사과나무를 가꾸고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 5~6년 동안은 극심한 일교차로 인한 냉해를 극복하지 못해 애써 키운 작물들을 밭에 내다 버리며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다. 포기하고 싶었던 절망적인 순간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이웃들의 따뜻한 온정이었다. 현재 그는 시래기와 산마늘 농사를 병행하며 매년 2억 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농사꾼이 되었다. 맛있는 사과를 키워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는 안 농부는 95세까지 과수원을 지키겠다는 포부를 안고 있다.

기후변화를 피해 양구로 찾아온 베테랑 농부

사과 재배 경력만 28년에 달하는 강원농장의 심정석(72) 농부의 사연은 기후변화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30대 초반 대기업 제약회사의 지점장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1세대 사과 농부였던 아버지의 삶에 감명받아 40대 중반에 귀농을 택했다. 경북 청송에서 19년간 전국 최고가 사과를 길러내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나날이 뜨거워지는 기후 앞에서는 한계가 명확했다. 사과 씨앗은 15도에서 23도 사이의 환경에서 양분을 끌어당기는 힘이 극대화되는데, 여름철 열대야가 길어지면 이 힘이 떨어져 과일의 품질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수확철인 10월에도 제대로 된 홍로 사과를 팔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던 중, 그는 관광버스 기사로부터 “양구에서는 10월에도 홍로가 제철이더라”는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다. 이후 양구 사과가 타 지역보다 두 배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직접 확인한 심 농부는 과감히 청송 생활을 정리했다. 현재 그는 해발 600m 이상의 고지에 위치한 4만 5000평(14만 8760㎡) 규모의 밭에서 연평균 10억 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밤 기온이 23도를 넘지 않는 양구의 서늘한 기후 덕분이다. 하늘과 동업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시도하는 그는, 훗날 85세가 되면 아들에게 이 비옥한 과수원을 물려주고 은퇴할 계획이다.

물 세척만으론 부족한 잔류 농약의 한계

양구의 고랭지 사과는 서늘한 기후 덕에 한 달에 한두 번만 농약을 쳐도 될 만큼 병충해에 강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 농업에서 농약의 사용은 불가피하며, 이를 식탁 위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제거할 것인가는 소비자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흐르는 물에 과일을 씻어내는 것은 흙이나 벌레를 제거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화학적인 잔류 농약을 없애는 데는 역부족이다.

실제로 2024년 미국화학회(ACS)의 학술지 ‘나노 레터스(Nano Letters)’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단순한 세척이나 껍질을 벗기는 행위만으로는 농약 섭취의 위험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이 라만(Raman) 이미징 기술을 통해 분석한 결과, 사과 껍질에 묻어있던 농약 성분이 이미 과육 내부 층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사실이 시각적으로 증명되었다.

과일 세척의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코팅 기술

이런 가운데 안심하고 신선한 과일을 즐길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해 이목을 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UBC) 연구진은 최근 과일 표면의 잔류 농약을 최대 96%까지 씻어낼 수 있는 생분해성 세척제를 개발했다. 티안시 양(Tianxi Yang)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평소 베리류를 한 움큼씩 먹는 아들이 권장량 이상의 농약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착안해 이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세척제는 옥수수나 감자에서 추출한 전분에 철분과 식물성 화합물인 타닌산을 혼합해 만들어진다. 이 혼합물은 일종의 끈적한 스펀지 같은 덩어리를 형성해 과일 표면의 농약을 효과적으로 흡착해 떼어낸다. 단순히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기성 있는 제2의 피부처럼 작용해 과일의 갈변과 수분 손실을 늦춰주는 역할도 한다. 세척제로 코팅된 과일은 산도나 용해성 당분 같은 품질 지표도 높게 유지되었다. 사과 한 개당 약 3센트(우리 돈 약 40원)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제조가 가능해 경제성도 뛰어나다. 연구진은 현재 상업용 가공 시설에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향후 가정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스프레이나 알약 형태의 제품 출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기후변화 속에서도 최상의 품질을 만들어내려는 농부들의 땀방울이 과학의 힘을 만나 더욱 안전한 식탁을 완성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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