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가 결국 멈춰 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거침없이 질주하던 비트코인 가격이 맥없이 무너지며 올해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하는 모양새다. 16일 뉴욕 시각 기준 9만 3,000달러 선 초반까지 밀려나며 올해 초 가격 수준으로 회귀한 데 이어, 현재는 온체인 데이터상으로도 뚜렷한 조정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투자 심리와 증발한 시가총액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는 ‘연말 비트코인 20만 달러 돌파’라는 장밋빛 전망이 팽배했다. 그러나 시장 분위기는 손바닥 뒤집듯 순식간에 냉각됐다. 대장주인 비트코인이 휘청이자 이더리움을 비롯한 알트코인들도 동반 추락을 면치 못했다. 지난달 초 4조 3,790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전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현재 약 3조 2,820억 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며, 단기간에 25%에 달하는 자금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가상자산 데이터 제공 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투자 심리를 나타내는 ‘공포와 탐욕 지수’는 17일 기준 ’17’을 기록하며 ‘극심한 공포’ 단계로 추락했다. 이는 시장이 바닥을 기던 지난 4월 초와 유사한 수준으로, 투자자들의 패닉 셀링(투매) 심리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가 쏘아 올리고, 트럼프가 떨어뜨렸다
이번 롤러코스터 장세의 중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재선 성공 직후 대통령 직속 ‘디지털 자산 시장 TF’를 출범시키고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12만 6,250달러라는 신고가를 견인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앞두고 촉발된 미·중 무역 갈등이 희토류 전면전으로 비화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여기에 미 연방정부 셧다운 리스크로 인한 주요 경제 지표 발표 중단, 이에 따른 연준(Fed)의 금리 인하 불확실성, 그리고 ‘고래(대형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도 소식이 겹치며 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빚을 내 가격 상승에 베팅했던 레버리지 물량들이 연쇄 청산된 것도 급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온체인 데이터가 가리키는 ‘조정’… 8만 7천 달러 선에서의 공방
폭락세가 진정되는 듯하지만 기술적 지표들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현재 비트코인은 8만 7,236달러 부근에서 거래되며 8만 6,822달러 지지선을 위태롭게 지키고 있다. 8만 9,800달러 저항선을 뚫지 못한 채 며칠째 박스권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온체인 데이터 역시 활력을 잃었다. 실현 시가총액 변화율(Realized Cap Change)이 1.4%까지 급락하며 밴드 하단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신규 자금 유입이 둔화되고 매수세가 약화되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를 단순한 폭락의 전조보다는 ‘숨 고르기’ 성격의 조정 국면(Consolidation)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단기 보유자 대비 장기 보유자 공급 비율(STH-LTH Ratio)이 상승하며 투기적 유동성이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는 점은 변동성이 커질 수 있음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급격한 추가 하락보다는 재축적 기간을 거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탄광 속 카나리아’ 된 비트코인, 반등의 열쇠는?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가상자산 급락이 전체 자산 시장의 위험 신호를 알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AI 버블 논란으로 기술주가 흔들리는 가운데, 가장 민감한 위험 자산인 비트코인이 먼저 반응했다는 것이다. 4년마다 찾아오는 반감기 이후 18개월 뒤 고점을 찍고 하락한다는 ‘4년 주기설’이 이번에도 적중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비트코인이 다시 강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8만 9,800달러 저항선을 확실하게 뚫어내야 한다. 이를 돌파할 경우 9만 1,521달러를 넘어 9만 5,000달러까지 반등을 노려볼 수 있다. NH투자증권 홍성욱 연구원은 “내년 클래리티법 통과 등 정책적 호재가 남아있어 반등의 불씨는 살아있다”고 전망했지만, 당분간은 8만 5,000달러 선을 지켜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